이 글은 (재)자연농법국제연구개발센터 블로그를 운영하는 조은농부가 번역한 글로, 블로그에서 퍼 온 것이다

 

자연농법(自然農法)의 원리

-오카다 모키치

 

 이 원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철저히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기성과학의 두뇌로서는 무리이기 때문에, 내가 신시(神示)에 의해 알아낸 유심과학을 가지고서 설명할 작정이다. 따라서 최초에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숙독완미 (熟讀玩味)하면, 반드시 이해가 될 것이 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과학미신(科學迷信)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데, 이것을 깨우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설명하는 것은 절대 진리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실이 잘 가리키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현재의 농법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통적방법과 과학적 방법을 병행하여, 크게 진보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그 결과는 그것을 배반하고도 남음이 있다. 작 년의 대감수에 의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직접적 원인이기도 한, 여려가지 재해에 대해, 그것을 즉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벼에 없었기 때문이며, 결국 벼가 약 체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 원인은 무엇인가 하면, 이것이야말로 비료라고 하는 독소 때문이라 하면, 아연해질 것이다. 어쨌든 오늘 날까지의 농업자는, 비료를 농경상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이 사고방식이야 말로 농민의 낮은 지식과 과학의 맹점 때문에, 비료의 해독을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중요한 일은, 과학은, 과연 다른 사물(事物)에 대해서는 훌륭함이 틀림없으나, 적어도 농 업에 관해서 만은, 무력할 뿐만 아니라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흙(土)의 본질(本 質)도 비료의 성능도 바로 지 금까지도 명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인위적 방법을 옳다고 하 여, 자연의 힘을 무시하고 있는 점이 있었던 것이다. 보라, 오랜 세월에 걸쳐 정부, 독농가, 학자 가 삼위일체가 되어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보 개선도 없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지난해와 같은 대흉작을 당하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과학은 자연에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그렇다면 금후의 대책 역시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전적으로 우리나라 농업은 장벽에 부 딪쳐서 어떻게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뻐할지어다. 신(神)은 이 장벽을 뚫고 나갈 방법을 가르치셨다. 이것이 자연농법이며, 이것 이외에 우리나라를 구할 길이 없음을 단언하는 바이다. 그러면 대체로 이 농법은 어떠한 것인가를, 다음에 상세히 설명해 보겠다.

대체로 이 문제의 근본은 흙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까지의 농법은 중요한 흙을 경시하고 보조적인 비료를 중시(重視)한 점에 원인이 있다.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어떠한 식물이라도 흙을 떠나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것에 관하여 좋은 예로서는, 종전 후 미국의 주둔병이 수재배(水栽培)를 행하여 주목을 끈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거니와, 이것도 최초에는 상당한 성적을 올린 모양이지만, 최근에 들은 바에 의하면 점차 퇴화하여, 끝내는 그만두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의 농업자는 흙을 무시하고, 비료를 작물의 식료(食料)라고까지 생각할 정도였기 때문에, 놀랄 만한 착각이었다. 그 결과 토양은 산성화 되고, 흙 본래의 활력이 쇠퇴한 것은, 작년 대흉작이 잘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농민은, 오랫동안 다액의 비료대와 노력을 허비하고, 흉작의 원인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므로, 그 어리석음은 비할 곳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면 이제부터 흙(土)의 본질에 대하여 신령과학(神靈科學)으로써 잘못된 점을 시정해 보겠는데, 그에 앞서서 알지 않아서는 안 될 일은, 본래의 의의(意義)인 것이다. 태초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어서, 인간이 살아나가는데 충분할 만큼의 식물을 생산하게끔 만드신 것이 흙이므로, 그것에 종자를 뿌리면 싹이 타서, 줄기, 잎, 꽃, 열매의 차례로 차차 발육시켜, 수확의 풍요한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쌀을 생산하는 흙이야말로 실로 훌륭한 기술자인 것이며, 크게 우대하여야만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물론 자연력이기 때문에, 이 연구야말로 과학의 과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어처구니 없는 계산착오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자연력보다도 인위적인 힘에 지나치게 의존한 잘못이었다. 그러면 이 자연력이란 무엇인가 하면, 이것이야말로 일(日), 토(土), 즉 화소(火素), 수소(水素), 토소(土素)의 융합에 의해 발생한 엑스(X) 즉 자연력이다. 그리고 이 지구의 중심은, 사람들이 잘 아는 불(火)의 덩어리로서, 이것이 지열(地熱)의 발생원(發生原)이다. 이 지열의 정(精)이 지각(地殼)을 통하여 성층권(成層圈)까지의 공간에 충전(充塡)되어 있으며, 이 정(精)에도 영(靈)과 (體)의 양면이 있어, 체(體)는 과학에서 말하는 질소(窒素)이며, 영(靈)의 쪽은 미발견이다. 그와 동시에, 태양에서부터 방사되어지는 정(精)의 화소(火素)로서, 이것에도 영(靈)과 체(體)가 있고, 체는 빛(光)과 열(熱)이며, 영(靈)은 미발견이다. 또 달에서 방사되는 정(精)은 수소(水素)로서, 체(體)는 모든 물이며, 영(靈)은 미발견이다. 이와 같이 이 삼자의 미발견인 영(靈)이 포합일체(抱合一體)가 되어서 생긴 것이 엑스(X)이다. 이것에 의해 일체만유는 생성화육(生成化育)되는 것으로서, 이 엑스(X)야말로 무(無)이면서 유(有)이며, 만물의 생명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농작물의 생육에 있어서도 이 힘에 의하는 것이므로, 이 힘이야말로, 무한의 비료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정하여 흙을 사랑하고, 흙을 존중함으로써만이, 그 성능은 놀라울 만큼 강화되는 것이므로, 이것이 참다운 농법이며, 이것 이외에는 농법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실행하는 일에 따라,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의 인간은 이성, 감정 등의 의지상념은 동물에게만 한정되어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 의지상념이 무기질(無機質)에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면 아연해질 것이다. 흙도 작물도 마찬가지이므로, 흙을 사랑하는 데에 따라, 흙 자체의 성능은 충분히 발휘되어지는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흙을 더럽히지 않고, 보다 청정(淸淨)하게 할 일이며, 이에 따라 흙은 기쁨의 감정이 솟아 활발하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단지 의지상념이 동물과 다른 점은, 동물은 자유동적(自由動的)인데 비하여, 흙이나 식물은 비자유정적(非自由靜的)이다. 그러므로 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감사의 상념을 가지고 다수확을 염원하면, 마음이 통하여 음덕은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은 모두다 무(無)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과학의 일대 결함이 있었던 것이다. (1954년 1월 27일)